제 738 호 [책으로 세상읽기] 불안의 서
[책으로 세상읽기] 불안의 서 ▲책 『불안의 서』 (출처 :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234233) 『불안의 서』는 포르투갈의 국민작가로 널리 알려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특히 깊은 울림을 주는 책으로, 그의 내면 세계와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책은 삶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페소아의 깊은 성찰을 담은 480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글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인간의 존재, 삶과 죽음, 자아의 비밀,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배수아 작가에 의해 완역되었으며, 번역 과정에서 페소아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모호한 언어의 결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살려내었다. 페소아는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불안을 마주하게 만든다. 페소아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깊은 슬픔과 고독, 그리고 좌절감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불안'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과 갈등을 가리킨다. “나는 다른 이들의 나-아님이란 성격을 질투한다. 모든 불가능 중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것은 내 일상의 욕망이 되었고, 모든 슬픔을 채우는 좌절이 되었다.”- 83 p.g “타인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413 p.g “우리가 꿈꾸는 사물은 하나의 면만 갖는다. 우리는 사물의 둘레를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면을 영영 알지 못한다.”- 579 p.g 책을 읽으며 감명 깊었던 부분들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며 가지지 못한 것을 서로 가지고 싶어 한다. 그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상대방이 가진 것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좌절된다는 이야기를 페소아는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읽다 보면 페소아의 표현력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모호하고 어두운 내용으로 800 페이지가 넘어 한 번에 읽기에는 버겁지만, 480편으로 이야기들이 나뉘어있어 조금씩 나눠 읽다 보면 어느새 완독하는 책이다.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불현듯 다가오는 불안이나 고독감을 이 책을 통해 차분히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페소아의 문장들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은민 기자
제 737 호 [책으로 세상보기]나보다 더 나 같은 나, 책 「나주에 대하여」를 읽고
나보다 더 나 같은 나 책 「나주에 대하여」를 읽고 ▲책 「나주에 대하여」 표지 (사진: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4907339) 소설은 나의 거울 소설은 종종 나보다도 더 나 같을 때가 있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모르고 넘겼던 마음들이 소설을 통해 생생히 살아나서 ‘아, 그때 내가 그랬었구나’ 하는 순간들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생각과 마음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비춰보고 내 마음을 살펴보곤 한다. 그렇게 소설은 이런 마음과 생각이 드는 건 나 밖에 없을 거라고 난 왜 이렇게 예민한지 모르겠다며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너 그때 그래서 그랬던 거야. 너만 그런 거 느끼는 거 아니야. 나도 그래. 우리 모두 그런 걸 느끼고 살아. 그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지' 하고 다독여 주곤 한다. 김화진의 단편소설 모음집 「나주에 대하여」도 그런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건 내 마음인데. 이거 나도 그랬었는데. 나한테도 이런 마음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 하고 오랫동안 주인공과 닮은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꿈과 요리 「나주에 대하여」에서 나와 가장 데칼코마니처럼 쏙 빼닮은 이야기는, 세 번째 단편 소설인 '꿈과 요리'였다. '꿈과 요리'에서는 서로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가장 친한 대학 친구인 수언과 솔지가 나온다. 대학 시절 수언과 솔지는 영화와 글쓰기라는 비슷한 꿈을 꾸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쯤 솔지는 좋아하는 영화와 글쓰기를 뒤로 한 채 은행원이 된다. 서로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수언은 친구 많은 솔지를 보며 솔지가 자신을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반대로 솔지는 수언이 자신을 친한 친구 바운더리 안에 넣어주지 않았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솔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재능이 없는 영화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고 계속해 나가는 수언을 질투한다. 반면 수언은 자신과는 다르게 사교성이 좋은 솔지를 보며 겉으로는 저렇게 나서고 다니면 좋나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런 솔지를 부러워한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 이리저리 뒤섞인 채 지내던 어느 날, 수언의 영화 평론이 당선된다. 이때 수언은 자신을 축하해 주는 솔지의 모습에 진심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불만을 터트린다. 이에 질세라 솔지도 수언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낸다. 그렇게 둘은 마음의 밑바닥을 드러낸 채 솔직하게 서로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와 닮은 부분들 친구 사이에서 서로를 좋아하기도 하고 부러워하다가, 그런 마음 때문에 싸우고, 화해하는 이야기 자체는 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에서 솔지와 수언이 느끼는 마음은 내가 종종 나보다 잘나 보이는, 재능 있어 보이는 친구들에게 가졌던 마음과 닮았으며 내가 전공 분야도 아닌 꿈을 향해, 성공의 입구가 아주 좁은 꿈을 향해 갈 때 들었던 마음과 똑같았다. 수언의 시선으로 본 솔지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솔지의 고민은 내가 종종 하는 고민과 비슷했고, 나는 엄마와 친구들에게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주 상담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친구들이 수언 같은 생각을 했다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가끔 그들이 하는 말에서는 수언과 같은 느낌이 느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다시는 털어놓지 말아야지. 내가 하는 고민을 수언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꿈과 요리’에서는 계속해서 나보다도 더 날 잘 아는 문장들이 날 둘러싸고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없니?”하고 말을 걸어왔다. 내가 한 번쯤은 겪어본, 이런 감정은 대체 뭘까 하고 고민했었던 감정들이 가득했다. 분명 나와 비슷한 학우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을 통해 학우들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연 정기자
제 737 호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기본적인 태도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기본적인 태도 대학은 단순히 학문을 쌓고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을 넘어, 인생을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다. 대학에서의 경험과 배움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의 역할과 위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가 속해 있는 대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부심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대한 자부심은 대학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는 학업 성취도와 개인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 학업에 있어 자부심은 동기부여의 원천이 된다.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학습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학업 목표를 향한 노력에도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성취감으로 이어지며, 성취감은 다시 학습 동기의 순환을 강화하게 된다. 대학에서의 시간을 단순히 학점이나 졸업장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투자로 인식할 때, 그 결과는 분명히 달라진다. 자부심은 취업과 대학원 진학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기업의 고용주나 대학원 입학 심사위원들은 응시자가 출신대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응시자의 학문적 기량과 더불어, 속해 있던 환경에서의 경험과 배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한 사람은 그 학교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는 그들이 선택한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을 줄 것이다. 자부심은 또한 네트워크 형성에도 중요하다. 자기가 졸업한 대학의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동문은 서로를 지원하고 격려하며, 사회에서 서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은 그 공동체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내며, 이는 장기적으로 경력과 인생에서 중요한 지지체가 될 것이다. 자부심은 단지 감정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학업과 인생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유익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다. 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쌓은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장래를 더욱 밝고 성공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회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에티튜드에 대한 것이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될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본적인 에티튜드, 즉 태도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기본적인 태도를 잘 습득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필수이다. 태도는 능력이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많은 고용주와 조직들이 채용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지원자의 태도다. 이는 단순히 예의 바르고 정중한 행동을 넘어서,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마음가짐, 책임감 있는 자세, 그리고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능력을 포함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에 진출한 후 직장 내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긍정적인 태도는 직면하게 될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회생활은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문제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개인을 더욱 성장시키고, 직장 내에서의 신뢰와 존경을 얻게 만든다. 협력적인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팀워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떤 분야에 있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개인적인 성과를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팀 전체의 성과에 어떻게 기여했느냐이다. 팀에서 협력적이고 지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신뢰를 얻고, 이는 곧 조직 내에서의 리더십으로 연결될 수 있다. 책임감 있는 태도 또한 필수적이다. 맡은 업무나 과제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신뢰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경력을 탄탄히 만들어 줄 것이다. 이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신뢰를 쌓는 중요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유연한 태도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을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기본적인 에티튜드는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기술과 지식은 배울 수 있지만, 태도는 삶 전반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대학 생활을 통해 이러한 태도를 잘 연마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사회에 기여할 때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다.
제 737 호 영국의 인종혐오 폭동과 계층격차
영국의 인종혐오 폭동과 계층격차 거의모든나라가다그렇지만, 영국의모습은하나가아니라여럿이다. ‘신사의나라’로알려져있지만, 축구장안팎에서진상을떠는훌리건의나라이기도하다. 신사와훌리건의묘한이중주는영화 <킹스맨>에잘나타나있다. 또한영국근현대사에서도과학기술의진보와더불어침략과수탈의이중주가두드러진다. 영국의한쪽낯은태양아래새로운것은없고옛것을고스란히간직하면손해볼일이없다는보수이지만, 다른쪽낯은젠더및인종의통합이라는가치를가장중시하는혁신이기도하다. 일찍이 1979년에마거릿대처가총리가되어서여왕이군림하고여성이통치하는나라가되었으며, 2022년에는인도계아프리카인부부의아들인라시수낵이총리자리에올라서“유색” 인종이다우닝(Downing)가 10번지의주인이되었다. 또한파키스탄계무슬림사디크아만칸이 2016년이후로수도런던의시장을지내고있다. 완전과는아직거리가없지는않겠지만, 젠더및인종의통합을선도하는나라로보기에모자람이없다. 이런영국에익숙한이들에게는어이가없을사태가지난 8월에터졌다. 영국중서부에서제노포비아폭동이일어나더니영국곳곳으로들불번지듯이퍼져나갔다. 7월 29일에사우스포트라는소도시에서르완다에서영국으로건너온그리스도교인부부의아들인 17세소년이칼로어린이세명을죽인비극적범죄가일어났는데, 무슬림난민신청자가범인이라는헛소문을극우세력이퍼뜨리자흥분한백인들이인종차별구호를외치며모스크와난민수용시설을공격하기시작했고, 이폭동은잉글랜드는물론이고웨일스와북아일랜드로까지퍼져나갔다. 폭동의기세가워낙거세서저지하는경찰이밀리는상황마저나타났다. 폭도는지나가는차를검문하면서운전자가백인이면보내주고백인이아니면공격하는행태까지보였다. 상점약탈은덤이었다. 영국이지향해온인종통합의가치를밑동부터뒤흔드는부끄러운사태가아닐수없다. 폭동교사자들이퍼뜨리는정보가가짜이며헛것이라는사실을일일이밝힐필요는따로없다. 믿고싶은것만가려서믿는그들에게는사실이중요하지않다. 영국에서왜이런일이벌어졌을까? 대중의무지만을탓하는것은지식인의오만일수있다. 산에는낙엽이늘쌓여있지만, 낙엽이촉촉하면불이붙을리없다. 불은낙엽이바싹말라있을때에만일어난다. 지난 8월영국의인종혐오폭동은유달리하층민에게가혹하게작용하는경제파탄과맞물려있다. 경제운영에무능한데다가계급및계층간격차해소에애쓰지않은영국보수당정권아래서힘겹게사는영국의중하층백인이울분을푸는대상을엉뚱하게난민과무슬림에게서찾았던것이다. 인종혐오는계급문제와연동한다. 영국사회가맞닥뜨린이문제를소수자의배제로해결하려든다면시쳇말로번지수를잘못짚은셈이다. 근본적으로는계급격차가줄어들어야인종혐오를잠재울수있다. 시간이오래걸리고품이많이들겠지만, 그길이올바른길이고결국은더지름길이기도하다. 류한수(역사콘텐츠전공)
제 737 호 다시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2
인사이드 아웃 1, 개봉 당시 평이 상당히 좋았던 픽사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여러 디테일이나 세심한 장치들이 어른들에게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시즌 2, 후속작이 나왔다. 인사이드 아웃은 어쩌면 한 번쯤 다들 상상해 보았을,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라일리라는 소녀의 머릿속 감정들이 의인화되고, 주변의 변화와 성장 과정 속에서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시즌 1에서는 기쁨이 인생의 주를 담당하던 라일리가 주변의 변화 속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고, 모든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여정을 그리고 있다. 기쁨이가 슬픔이를 골칫덩이로 취급하며 감정본부에서 다투다 저 깊은 내면의 세계로 떠나게 되는데, 사실 이게 다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바라보면 라일리 스스로가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주된 감정(기쁨)이 그녀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우울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오고, 혼란 속에서 결국 갈피를 잡지 못해 감정을 저 아래 묻어둔 것 같기도 하다. 내면세계 속에서 본부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 제대로 감정을 다시 통제하기 위한 모험은 감정들과 라일리를 성장시켰다. 라일리는 아직 감정이 역동적이고, 통제가 어려운 어린아이지만 여느 누구나 그랬듯이,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감정과 생각, 성찰에서 오는 깨달음(이성)은 다른 것이기에. 때로는 당장의 감정에 못 이겨 무신경하게 기억을 넘기고, 지나치지만 결국 물밀듯이 쏟아진 기억들은 라일리를 덮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험과 기억들은 그녀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신념으로 자라날 것이다. 2에서 그랬듯이. 잘해보고 싶었던, 어느 누구나 공감할 ▲ 인사이드 아웃2 포스터 (사진 : https://m.blog.naver.com/stella9497/223501668420) 2에서는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사춘기에 접어드는 과정을 그렸다. 이번에도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 마주하게 되면서 혼란에 접어들고, 새로운 감정들이 튀어나온다. 특히 감정본부와 라일리를 지배한 불안이. 극 중 불안이는 ‘너는 라일리의 기쁨을 담당하지만, 나는 라일리를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불안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불안이라는 건 감각을 극대화해서 사람이 자극에 예민해지도록 만든다. 이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시켜 준다. 언젠가 수강한 심리학 강의에서 이런 불안, 예민함이 높은 사람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유래된 형질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불안 관리는 결국 스트레스와 직결되어 있는 만큼 스스로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배우는 중에 있다. 이후 일이 해결된 후일담에서는 불안이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연출도 이젠 라일리가 어느 정도 불안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장을 가늠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에 기억에 남는다. 한편,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하면서 기존 감정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불안'이라는 강박적인 요소가 치고 들어와 원래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뚝딱거리는 것이다. 닥쳐올 외부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안으로 라일리는 미래를 위해 감정들을 억압하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름대로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던 라일리의 좁은 신념이자, 약간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동시에 본인 스스로의 강박과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대하는, 어린 부분이 여기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인간은 다면적이고, 정의할 수 없지만 추구하는 무언가(신념)로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과정의 연속이다. 모두가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인간이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언젠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던가 잠시 되짚어보게 된다. 라일리 스스로가 감정에 못 이겨 저 멀리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이 폭포수처럼 다시 쏟아지고, 라일리는 일종의 '성찰'을 한다. 신념은 꺾일 수도 있고, 새로 자라날 수도 있는 것이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 감정들이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안에 잠 못 드는 모든 라일리에게 사실 감정들의 이야기도 중간중간 눈에 들어왔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라일리가 페널티박스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혼란스러운 싸늘함. 점점 차오르는 불안은 통제하지 못하고 점차 심장 소리가 더 커지도록 연출된다. 사람이 극도로 불안하고 예민한,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때를 정말 잘 표현한 것 같다. 불안과 부담, 자책과 자기혐오 등에 휩쓸린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누구나 진심으로 ‘불안’ 해본 사람이라면 당시 머릿속에서 ‘불안’이 통제를 잃은 모습의 연출에 많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든 감정들이 스스로 라일리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라일리의 다면적인 신념 자체를 감싸안아 주는 따스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스스로를 생각해 주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실제로 감정들은 라일리를 ‘딸’이라고도 부르며, 매번 '라일리를 위해서'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각자의 선택과 그 결과와는 별개로 라일리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는 점이 마음을 따스하게 만든다. 인사이드 아웃2는 성장한 라일리의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영화였다. 매번 볼수록 세심한 디테일이나 연출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해 어린이 애니메이션 영화이지만 결코 절대적인 깊이는 얕지 않다. 불안, 감정들의 혼란 속에서 고민하던 모두의 유년기와 지금의 라일리들에게 위로를 던지고 있는 인사이드 아웃2. 고민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내일을 살아갈 모든 라일리들을 응원한다. 곽민진 기자
제 736 호 [순간포착] 낭만, 젊음, 사랑
낭만, 젊음, 사랑 개강과 함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여름의 열기가 가라앉고, 캠퍼스에는 가을의 기운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대학 생활은 매 순간이 특별하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 세 가지 키워드, 낭만, 젊음, 사랑을 마음에 품고 2학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낭만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낭만'이라는 단어를 특별한 순간이나 로맨틱한 상황에만 연관 짓곤 한다. 하지만 낭만은 그 이상이다. 낭만이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특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커피 한 잔, 도서관에서의 늦은 밤, 캠퍼스의 가을 단풍길을 걸으며 느끼는 여유 속에도 낭만이 깃들어 있다. 대학 생활에 나만의 낭만을 더해본다면 그 순간들이 쌓여 훗날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젊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이 시기의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과 도전정신을 상징한다. 실수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다. 대학생으로서의 젊음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나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이 젊음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이 젊음을 마음껏 누린다면 나중에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대학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대학 시절의 사랑은 단순히 연애에 그치지 않는다. 친구를 향한 우정, 가족을 향한 감사,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태도 모두가 사랑의 한 형태이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더욱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가는 이 시기를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이 사진은 하계방학에 가족여행 중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마지막 학기만 남은 대학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2학기는 낭만을 찾고, 젊음을 만끽하며, 사랑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학우들도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마음에 품고, 대학 생활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개강의 설렘과 함께 시작하는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며, 가장 특별한 시기의 청춘을 만들어가 보자. 정소영 기자
제 736 호 [교수칼럼] 마케팅 포지셔닝과 나의 미래 설계하기
마케팅 포지셔닝과 나의 미래 설계하기 꽤 오랜 시간 회사에 있다가 학교를 다시 오게 되면서 이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지금 제 나이에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 신입직원은 남녀를 떠나 거의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고, 28살만 되도 모두가 어리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고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분야별로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다니던 공공기관은 실제로 인턴, 졸업 하기 전 NCS 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 취업하기 때문에 20대 후반이 되어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신입직원들 중에는 학교 다닐 때 창업도 해보고 체험형 인턴을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공공기관과 자신이 잘 맞는다 라는 것을 안 뒤 선택한 경우도 많아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보니 아직 20대 초반인 학생들이 스스로를 늦었다고 생각하고 나의 미래를 빨리 결정해야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졸업 전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고민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하다. 다만, 앞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 학생들이 충분히 고민하고 많이 경험한 뒤에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이것 만큼은 내가 1등”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고 사회에 진출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1등을 해야 할까? 마케팅의 포지셔닝에서는 그 1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지셔닝은 기업이 목표로 하는 소비자의 마음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이 행동하는 일련의 행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이것만은 우리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소비자에게 주는 것이다. 가격을 저렴하게, 디자인을 독특하게, 재밌게 등등.. 소비자의 마음 속에 자기만의 1등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즉 남들과는 다른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낸다면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도 미래를 설계할 때 늦었으니 빨리 선택해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서 내가 가장 즐겁게 해본 일이 무엇인지, 남들은 어려워했지만 나에겐 쉬웠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내가 1등할 수 있는 분야에 진출해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즐겁게 삶을 살기 위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앞서 공공기관을 목표로 입사한 신입직원들 중 3-40%가 내가 생각한 일과 다르다는 이유로 3개월도 안되어 퇴사하기도 한다. 힘들게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해보고, 인턴이나 일경험을 해보고 공공기관을 선택한 직원들은 자신이 공공기관이 지닌 특성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다니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렵고 또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나의 마음 속에서 내가 1등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 꼭 필요한 시간을 늦었다라는 생각으로 외면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을 했을 때 가장 칭찬을 많이 들었는지, 무엇보다 내가 가장 즐거웠는지를 생각하고 나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나의 미래를 설계를 한다면 오늘은 다소 힘들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더 즐겁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736 호 [교수사설]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와 인문학적 자질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와 인문학적 자질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은 보편적인 사회적 환경이다. 이미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된 상황에서, 유튜브가 2005년에,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인 애플의 아이폰이 2007년에 등장하여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절대다수의 상명대 학생들에게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등은 어릴 적부터 친숙한 디지털 기기들일 것이고, 유튜브는 다양한 지식과 문화콘텐츠의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네이버와 다음으로 대표되는 자국어 포털 사이트, 그리고 카카오톡이라는 국민적 소셜미디어가 일찍이 자리 잡은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과 같은 IT 선진국에서, 디지털 기술은 사회적 환경을 넘어 거의 ‘제2의 자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수년 사이 본격적으로 전 지구적인 사회적 의제가 된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사물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전자제품을 통하여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으며, 쳇 지피티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인식과 사고방식 자체를 전반적으로 재규정할 수도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고도화로 인하여, 어쩌면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사회활동을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 인간을 ‘대신하여’ 사고하고 활동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장 손쉽게 대치할 수 있는 직업군 등에 대한 언론보도나 전문가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큰 사회적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급속한 사회적 변화는, 그 자체로 불가역적인 현실일 것이다. 따라서 우선 상명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이나 개인적 관심사를 관련된 디지털 기술과 연계하여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학교 차원에서도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연동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한 편,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인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누구보다도 딥러닝과 인공지능의 창시자와 개발자들 및 관련 업계의 중요 인물들이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딥러닝과 인공지능 기술의 대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턴이 자신이 발전시킨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작년 5월에 구글을 퇴사하였다. 이보다 앞선 2023년 3월 22일, 미국의 비영리단체 ‘생명의 미래 연구소’는 ‘거대 인공지능 실험 일시 중지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AI 연구소들이 더욱 강력한 디지털 두뇌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경쟁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갇혀있고, 아무도–심지어 이를 발명한 사람들조차–이를 이해하거나, 예측하거나, 안정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최근 몇 달 동안 목도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수준(=충분한 재원을 동원한 실질적인 예방적 관리 수준)의 계획과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우리는 이 기계들이 허위선전과 거짓 정보로 우리의 정보 채널을 뒤덮어 버리도록 허용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일, 심지어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는 일까지도 자동화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종국에는 우리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더 영리해서,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고 우리를 대체할 수도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하는가? 우리는 인류 문명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결정을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기술 업계의 리더들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위의 서한에 일차로 서명한 1279명의 명단에는 인공지능 연구의 최고 권위자들뿐만 아니라 인문학계의 관련 학자들, 오픈 에이아이(Open AI)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등의 기업인들도 있다. 그런데 이 서한은 거대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 자체로는 필연적이며, 신중하게 사용하면 인간에게 큰 이익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상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거대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쟁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라서, 이 칼럼을 쓰는 나 자신도 사실은 지극히 피상적인 지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프랑스 문화예술 전공자로서, 수학적이고 공학적인 이해는 사실상 전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엄청난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사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전공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가령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앞선 총체적 비전과 비판적 상상력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사이버 펑크 SF 장르의 토대가 된 소설 『뉴로맨서』를 1984년에 출간한 작가 윌리엄 깁슨이 있다. 깁슨은 이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 매트릭스, 네트워크 형 거대 인공지능 등의 개념과 상상력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1984년은 이제 막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최초의 매킨토시 모델을 출시한 해였다. 따라서 깁슨이 『뉴로맨서』를 쓰면서 아직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상명대 학생들이 한 인간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이미 야기하고 있고 앞으로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큰 사회경제적 의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의 전 부문에 관련된 기술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 디지털 기술을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창조적 시도들이, 경제적 차원과 연동되어 다양한 직업 또한 만들어 낼 것이다. 인공지능을 직접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일을 하게 될 이공계 학생들도, 자신이 하는 일의 총체적인 인간적 의미를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때,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고 필요한 인공지능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 혹은 이에 대한 깊은 이해에 더해, 인문학적 사고 능력과 상상력을 고루 갖춘 뛰어난 상명의 인재들이 전공을 막론하고 배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제 736 호 [기자석] 나의 아픔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것
올해 들어 나는 정말 ‘고통받는 인간’이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들이 유독 많았고, 성격도 조금 변했다. 여러 일로 힘들었던 와중에, 우연히 듣게 된 ‘호모 엠파티쿠스(고통받는 인간)’이라는 교양수업을 통해 나에게서 힘듦의 원인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호모 엠파티쿠스(고통 받는 인간) 강의 수업 자료 중 박완서「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자식을 잃은 나의 고통에서 다른 사람은 위안을 얻는다. 강의 중 교수님은 이 부분을 설명하시며 남이 자신의 고통과 나의 고통과의 비교를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의 윤리적 문제에 생각해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며 나보다 더한 남의 고통과 비교해 위안을 얻는 것과는 반대로, 남의 고통에서 더한 아픔을 느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내 판단의 기준은 나보다 힘들,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힘들더라도 나보다 더 바쁜 사람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더 노력하고 더 힘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다들 힘든데 나만 힘들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내가 아닌 남에게 있어서, 더 힘든 것 같다. 겪고 있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아픈 나를, 내가 더 옥죄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내가 나와 누군가의 아픔을 또 다른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힘들 때 내 아픔을 누군가의 아픔과 비교하며 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아픔을 제일 잘 아는 건 나니까, 나의 아픔에 공감하고 싶다. 그저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을 잘 찾아낼 수 있었으면.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비교보다는 상황과 감정에 대한 공감이 앞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힘든 상황에 허덕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픈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소중한 우리들을 아껴주자. 이은탁 기자
제 735 호 [만평] 늘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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