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4 호 [영화로 세상 보기] 고전 로맨스 영화의 정수, 영화 <타이타닉>
[영화로 세상 보기] 고전 로맨스 영화의 정수, 영화 <타이타닉> ▲영화 타이타닉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타이타닉, 고전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 섬세한 영상미와 디카프리오의 전성기 시절, 아름다운 사랑의 비극이라는 클리셰적인 스토리라인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해 준 고전 명작영화이다. 부유층들의 사치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꿈의 배라고도 불렸던 이 배 안에서 두 남녀주인공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서로의 꿈과 미래, 목숨까지 불사할 사랑. 그런 열렬한 사랑 속에도 배는 순항하지 못하고 빙하에 부딪혀 위기에 봉착한다. 살아 나갈 수 있는 구명보트는 한정되어 있었고 배는 금세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 속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주인공 연인 외에도 서서히 다가오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인상 깊다. 다가오는 죽음 속에도 서로를 끌어안으며 침대에서 눈을 감는 노부부,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잠에 빠져드는 어린아이들, 생과 사의 교차 속 그것을 각자 받아들이는 방식이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이다. ‘내 최고의 행운은 도박에서 이 배의 티켓을 딴 거야, 당신을 만났으니까.’ 남주인공 잭이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면서도 여주인공 로즈를 걱정하며 한 말이다. 죽어가는 와중, 상대를 생각할 수 있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로 모두 각자의 운명적인, 목숨도 불사할 사랑을 꿈꾸길, 삶에 대한 자세를 되돌아보길 기대한다. 곽민진 기자
제 724 호 [기자석] 초연결 사회와 잊히는 자들
초연결 사회와 잊히는 자들 IT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는 서로 간의 긴밀한 디지털 연결 관계를 만들어 냈다. 이것을 우리는 ‘초연결사회’라고 부른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는 50억 대를 넘어가고 있고, 한국의 경우 무려 국민의 약 95% 정도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이니 그야말로 휴대전화 하나로 만사가 형통할 지경이 이르렀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기술 발전을 환영하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물 간의 원활한 소통이 기반이 되어야 만족하는 사회이므로, 역으로 생각해보면 기기 없이는 네트워크 연결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 된다. 이는 곧 초연결사회로의 도약이 사람이 기기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의존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온라인 시장이 가열되며 더욱 민감해졌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전자기기 문명을 향유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선가 전기가 없는 이전으로 회귀할 가능성 또한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21년, KT의 통신기기가 말썽을 부리기도 했고, 2022년에는 카카오톡 ‘먹통 사태’라고 명명할 정도로 네트워크 연결 장애가 사회에 큰 파급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켜봐 왔다. 한국 사회는 특히 초연결사회와 동시에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21세기 청년을 아우르는 젠더 갈등부터 시작해 저출산 고령화와 ‘MZ세대’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세대 갈등, 그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대중교통 점거 시위 등이 그 증거로 남는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봤을 때,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고 있는가, 멀어지고 있는가? 기술이 수반되더라도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않으면 기술의 발전이 가지는 의미가 폐색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본인이 소속하거나 소속하고 싶은 집단에서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반대의 의견은 무작정 비난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삶과 직결되지 않은 문제가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인간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데, 괜히 힘을 들이면서까지 남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란 에너지 낭비라고 여길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의견을 수용하고 가장 최선의 답을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초현실사회는 특정 사람들끼리의 연대만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이면을 들춰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서 사회로부터 점차 잊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는 그들의 대표주자로 작용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키오스크는 이제 외식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기다. 연세가 지긋하거나 몸이 불편한 손님들은 키오스크보다도 사람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필요한 능력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대체적으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언어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새로운 능력을 중점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한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의 사회 심리학 교수인 Sonia Livingstone이제시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구성 요소에 따르면 접근 능력, 분석 능력, 평가 능력, 창조 능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필자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접근 능력이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모두가 키오스크와 같은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시대의 과제이자 책무인 것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만을 제고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다발적 흉기 난동 사태의 유형‘묻지마 범죄’를 따져보면, 대부분의 가해자가 경제적 빈곤을 겪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외 계층이라는 표본이 존재한다. 국무조정실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24만 명 규모라고 밝혀진 바, 가해자들은 보통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이 자신을 방치한 사회를 향하고 있기에 그것이 범죄의 형태로 표출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로부터 잊힌 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모두가 함께하는 진정한 초연결사회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김상범 편집장
제 723 호 [순간포착] 오늘을 복기하며
[순간포착] 오늘을 복기하며 사람은 고개를 들고 걸어 다닐 수 없다. 매사에 발밑과 눈앞을 응시하며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하늘 풍경을 사진에 담거나 삶이 힘에 부쳐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 위함도 있기에 우리는 살면서 전혀 고개를 위로 아니 들지는 않는다. 그저 그 자세가 흔치 않을 뿐이다. 굳이 하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는 제대로 살았는지, 누구에게 잘못한 일은 없는지 등의 자아 성찰 또는 반성의 시간을 갖기 위함도 있다.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 부터 그 출발점을 되돌아보는 복기가 있듯이 한낱 놀이에서 조차도 반성의 시간이 있으니 인생에서는 더욱이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자기 전 하루에 한 번씩은 아니어도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가끔은 복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인생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자신의 인성이자 품격으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니 일종의 인생 교양 수업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단 10분도 채 되지 않는 교양 수업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이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학우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시원 기자
제 723 호 [만평] 다시 시작
김다엘 기자
제 723 호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책 <작별하지 않는다>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책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 문학동네 / 2021 (출처: 조선일보) 책의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 이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여러 궁금증이 들었다.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애시당초 ‘작별’이란 무얼까'와 같은 것들이 말이다. 책을 거의 중간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아는 학우들이 얼마나 있을까? 장담하건대 안다고 할지라도 이름만 접해봤을 학우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제주’, 부담 하나 없이 살러가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제주’. 그렇다, 그런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임에도 우린 우리가 겪은 일들이 아니기에 잘 알지 못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우리가 광주 사람들처럼 치를 떨 정도로 분노할 수 없듯이, 기껏해야 교과서에 한 두 문단으로 소개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우리는 많이 알 수 없다. 그조차도 정권이 바뀌고, 교과서가 개정되면 내용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이 사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주도 역대 참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학살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무려 민간인만 약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던 이유는 4.3 사건이 약 7년 7개월에 거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마을에 ‘초토화작전’을 실시하여 95% 이상이 소각됐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들이 명령 하나에 집 채 타버리거나 죽게 된 것이다. 이때의 희생자 수는 최대 제주도민의 1/8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이며, 아직까지도 유골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하’와 ‘인선’ ‘경하’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작가이다. 학살에 대한 소설을 쓴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긴 무력함과 우울감에 빠져 하루에 한 번 죽조차도 겨우 먹는 상태로 발신인을 누구로 해야 할지조차 정하지 못하는 유서를 여러 번 다시 쓰고 찢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경하’의 친구, ‘인선’은 몇 편의 영화를 내고 목공소를 차린 인물이며, ‘경하’와 마찬가지로 억압받았거나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 둘은 언젠가 제주도에서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매년 이런저런 일로 흐지부지되어 후년, 내후년으로 미뤄지기만 하였다. 그렇게 약속을 한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제야 살아보겠다며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경하’에게 ‘인선’의 연락이 온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긴박함이 느껴지는 짧은 문자였다. 병원에 가자 ‘인선’은 침대에 누워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고 있었다. 목공소 일을 하다가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 한 마디씩이 잘려버리고 만 것이다. 봉합 수술을 받아 침대 밖으로 나가지도, 걷지도, 심지어 말도 많이 해서는 안 되는 ‘인선’은, 그녀의 친구 ‘경하’에게 제주도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가서 돌보던 앵무새 ‘아마’가 죽지 않도록 물과 밥을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향하게 되고, ‘인선’을 통해 그녀의 어머니가 겪었던 제주 4.3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이다. 작별하지 말아야 한다. ‘작별’에 대해서 사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라고 정의한다. 먼 해외로 나가게 되어 가족과 인사를 하거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순간. 또, 누군가 죽었을 때에도 우리는 작별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작별은 ‘잊혀짐’이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 대목처럼 우리가 죽은 이들을 살려낼 수는 없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에 찔러야 신경을 살릴 수 있던 ‘인선’처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와 같은 많은 사건들을 말이다. 가슴 아픈 일들이지만, 외려 가슴 아픈 일들이기에 더욱 자주 상기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채윤 수습기자
제 723 호 [영화로 세상 보기] 원자폭탄의 아버지, 영화 <오펜하이머>
[영화로 세상 보기] 원자폭탄의 아버지, 영화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극 중 명대사로 꼽히며 실제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하고 한 말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2막의 구성 속에 세 개의 이야기 지난 8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2막의 구성 속에 세 개의 이야기를 교차편집하는 양상으로 극이 구성된다. 먼저 풀컬러로 구성된 극은 오펜하이머가 유럽에서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고,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두 번째 빛바랜 고전영화 색감은 1945년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매장하기 위해 누명을 씌우고 청문회를 여는 내용이며 마지막 흑백의 색감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가 상무부 장관 임명을 위한 청문회에 참가하는 내용이다. 개발한 오펜하이머조차 두려워했던 원자폭탄의 위력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영화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오펜하이머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연출과 두 개의 청문회를 맞세우는 구성을 통해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더 높여준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오펜하이머가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승승장구할 때 오펜하이머는 국민적 영웅이 된 것 같은 기쁨과 동시에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진다. 때문에 이후에는 원자폭탄 개발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조차 사용을 반대한 원자폭탄은 과연 전쟁을 막을 무기일까, 전세계를 핵전쟁으로 몰아넣을 무기일까? 전 세계 핵무기 보유 근황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2 전 세계 핵무기 수는 1만 2507기에 달하며 미국과 러시아가 전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핵무기 수는 냉전 말기였던 1986년 7만여 기에서 점차 줄여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미-중 대결 격화 등으로 인해 다시금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국가별 핵무기 보유량 (출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핵무기를 줄여가는 노력 필요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전쟁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원자폭탄이 개발된 후부터 현재까지 세계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단지 모두가 핵폭탄의 위력을 잘 알고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늘 핵전쟁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미 핵무기가 개발된 이상 그것이 개발되기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지만 국가간의 상호협력을 통해 핵무기를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윤정원 부장기자
제 723 호 [교수사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복잡한 사건의 성격을 단순화하면 인식 과정의 효율성이 높아져 이해가 쉬워지지만, 단순화가 지나치면 정확한 이해가 어려워진다. 어떤 사건이든 복잡한 배경에서 온갖 요인이 작용해서 일어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일어난 전쟁은 배배 꼬인 실타래 마냥 유달리 복잡한 사건이다. 이 전쟁을 단순하게만 이해하면, 지구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시대에 우리의 대처가 부실해질 수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할 우리 상명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찬찬히 짚어볼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전쟁에서는 “인지전”의 양상이 도드라진다. 전쟁을 치르는 이와 지켜보는 이를 대상으로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전쟁 인식에 서사를 주입해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각별하다. 교전국은 늘 대의명분을 내세워 제 편을 늘리려 했지만, 이 전쟁의 경우는 한층 더 하다. 이제는 전쟁과 실제 전투의 실상이 소문, 사진, 보도가 아니라 드론에 달린 카메라로 세계 구석구석까지 전달된다. 전투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이가 수천만, 수억 명에 이르며, 이들의 인식은 승패를 가름하는 또 하나의 중대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와 서방 세계는 나름의 서사를 펼친다. “루스키 미르”, 즉 동슬라브인 권역을 침탈하는 적을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내고 러시아를 지키고자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러시아 측의 서사다. 이 서사의 효과는 동슬라브 문화권에 국한될 수밖에 없으며, 정작 “루스키 미르”에 들어가는 우크라이나에 먹힐지도 의문이다. 러시아의 서사에 서방 세계는 푸틴의 야욕에게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서사로 맞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이 곧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러시아의 서사보다는 서방 세계의 서사로 기운 셈이다. 하지만 서방의 서사에도 맹점이 있다. 그 맹점이란 우크라이나를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991년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가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를 들춰보면 당혹스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 20세기 초엽에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세력 상당수가 파시즘에 경도되어 인종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스테판 반데라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파시스트 민족주의 세력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세력이 “순혈 우크라이나인의 나라”를 우크라이나 땅에 세우겠다며 유대인과 폴란드계 주민 수십만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데라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으며,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 세력을 “네오나치”로 일컬으며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구실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척결을 내세운다. 푸틴의 주장과 달리, “네오나치”는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강하지 않은 세력이다. 하지만 그 세력이 우크라이나 정계에서는 그 수에 걸맞지 않게 큰 영향력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서방이 내세우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의 서사도 부당한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루스키 미르” 서사 못지않은 허구일 수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문제를 풀겠다며 전쟁을 택한 푸틴은 반데라가 염원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오히려 키워주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한편, 푸틴의 야욕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해석은 단순화의 극치일 따름이다. 21세기를 살아갈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이 전쟁을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내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이다. 역사콘텐츠전공 류한수 교수
제 722 호 순간포착 <시간의 물결>
순간포착 <시간의 물결> 어느덧 길었던 방학을 뒤로 하고 두 번째 학기가 찾아왔다. 길었던 시간이니만큼 여운도 남을 것이며 어쩌면 후회스러운 나날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장황한 계획도 세워 뜻깊은 방학을 보내고자 그 누구보다 더 노력했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해 실망도 더 클 수 있으나 실은 그러한 후회, 실망감 등이 방학 동안의 노력을 증명하는 셈이다. 현자는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 2개월간의 긴 여행의 종지부를 찍었으니 다가오는 새학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 흘러갈 뿐이다. 과거의 시간이 후회로 남는다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현자이다. 파도는 한번 지나치는 것이 아니며 일렁이는 물결과 함께 한결같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파도처럼 시간도 그러하다. 밤이 지나가면 동이 트듯이 시간 또한 반복되는 것이니 한번 놓쳐버린 시간이라고 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놓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나 시간은 반복이기에 그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주워 담으려 애쓰는 것이 아닌 시간이라는 물결을 타며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학우 여러분이 되었으면 한다. 양시원 기자
제 722 호 [만평] goodbye August
제 722 호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놓치고 있던 수면의 중요성,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가 놓치고 있던 수면의 중요성,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매슈 워커/ 열린책들/ 2019 많은 학우들이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통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놀고 싶어서 같은 여러 이유들로 늦게 자거나 밤을 새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밤샘은 정신적 문제를 떠나서 우리 신체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이러한 문제를 파고든 책이 바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면 의학의 최전선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잠의 이모저모를 과학적 근거들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잠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방법과 4가지의 챕터(1부 잠은 무엇인가/ 2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3부 우리는 어떻게, 왜 꿈을 꾸는 걸까)로 나누어져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학습이 이뤄지기 전에 뇌가 새 기억을 만들도록 준비하고, 학습이 이뤄진 뒤에는 그 기억을 굳히고 잊어버리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낮잠을 잔 이들은 뚜렷하게 더 나은 학습 능력을 보이고, 사실들을 기억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잠은 밤에 뇌의 정보 구조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20분쯤 짧게 자는 낮잠도 기억 응고화의 혜택을 제공한다. 그 안에 비렘수면이 하는 역할이 있다. 렘수면 이전에 발생하는, 숙면이라는 이 시간동안 뇌는 망각을 통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보존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삭제한다. 렘수면 상태에 발생하는 뇌파 중 하나인 수면 방추는 해마의 저장소가 저장할 필요가 없는 항목은 버리고 나머지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기억을 정리해준다.” 수면은 창의성에도 관여하며, 부족한 잠은 주의력과 일의 수행 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교통사고 등을 증가시킨다. 또한 비합리적인 감정을 표출하게 만든다. 잠이 부족한 뇌는 긍정적 및 부정적 양쪽의 감정의 극단을 오다가다 하게 하며, 좋지 않은 수면은 당뇨병 우울증 만성통증 뇌졸중 심혈관질환 같은 여러 문제를 부른다고 주장한다. 이렇게만 봤을 때는 마치 근거 없이 작가의 생각만 들여놓은 것 같지만 이 책은 각각의 수면과 관련된 논리에 대해 근거 실험들을 곁들여 소개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다. 학기가 시작된다면 과제, 팀플, 중간고사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초조하게 밤을 새면서 공부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밤샘이 불가피한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 전에 이 서적을 읽고 잠에 대해 대비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장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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